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강의 변 (문단 편집) == 기타 == 한편 정강의 변으로 [[공자]]의 종가도 분열되었다. 곡부의 공묘를 지키던 [[연성공]](공자의 적통에게 내려진 작위) 공단우는 남송 조정을 따라 남하해서 [[절강성]] 구주(衢州, 현 [[취저우]])에 새로운 공묘를 세웠다. 곡부에는 공단우의 동생 공단조가 남았는데, 이후 금나라는 공단조를 새 연성공으로 임명하였다. 그래서 공단우의 가문을 남종, 공단조의 가문을 북종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원나라]] 때 [[쿠빌라이 칸]]이 남종의 종손인 공수(孔洙)에게 곡부로 돌아가서 가문을 이으라고 명하면서 어느 쪽을 정통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불거질 뻔하였는데, 공수가 북종의 종손인 공치에게 연성공 자리를 양도하는 용단을 내려 집안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를 공수가 연성공 작위를 양보했다고 해서 '공수양작(孔洙讓爵)'[* [[원사(역사책)|원사]]엔 공수양작에 관한 기록이 없고 당시 북방 사인들과 쿠빌라이 칸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애초에 남인인 공수에게 연성공의 작위를 잇게 했을 리가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이라고 부른다. 휘종, 흠종과 비슷한 굴욕을 겪은 황제가 있는데 [[서진]]의 [[회제(서진)]], [[민제(서진)]], [[명나라]]의 [[정통제]], [[서양사]]에서는 [[로마 제국]]의 [[발레리아누스]]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